돌아가는 펭귄드럼 上 001-3
유감이게도 타카쿠라 쇼마군, 타카쿠라 칸바군, 자네들의 소중한 여동생은 방금 죽어버렸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거다.
전신의 온도가 내려가, 발밑이 둥둥 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지금의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멈춰버린 히마리보다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겠지.
「형」 목소리를 쥐어짜 말했다.
형은 안색의 변화 없이, 웃지도 울지도 않고, 분노도 증오도 없이, 식물처럼 히마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카쿠라씨. 아니, 칸바군, 쇼마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와시즈카 의사의 말은 어느새 시작되어 이미 끝나있었다. 명복을 빈다는건 실제로 무슨 의미의 말이었던 것일까. 유감스럽네, 가엾구나와 같은 의미라고는 생각되지만.
만약 이게 꿈이라면 나는 지금 바로 눈을 떠서, 형을 두드려 깨우고 히마리의 방으로 달려갈텐데. 가령 그것이 새벽 세시라고 해도, 아침 여섯시라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든 형에게 걷어차이거나 불평을 듣게 되더라도. 쭉, 히마리가 자고있는 커다란 캐노피가 달린 침대 옆에서, 가빠진 숨을 돌리면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기다릴텐데.
천장 높은 영안실은 마침 유리면에 저녁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어딘가 외국의 교회처럼 기묘하게 장엄한 공기가 감돌고 있다.
조그마한 침대에, 히마리는 아무 꾸밈 없는 하얀 시츠를 뒤집어쓰고, 얼굴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그 시츠에 매달려 구겨진 얼굴로 흐느껴 우는 나를, 형은 벽에 기대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히마리,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목소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목이 메어 말하기 어렵다.
「그 의사. 완전 돌팔이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싸늘한 목소리로 형이 말했다. 「지금 히마리의 상태로 살아서 돌아다니는게 기적이라고. 언제든 각오를 하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영안실은 아무리 햇빛이 쏟아지더라도 조금 쌀쌀하고, 죽은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나며, 목소리가 잘 울려퍼졌다.
「이것이 히마리의 운명이었던 거야. 괴로움 없이, 정말 좋아하는 추억의 장소에서 떠난거야. 오히려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형은 크게 숨을 쉬고 벽에서 떨어졌다. 나는 훌쩍이는 것을 억누르고 형의 말을 들으면서,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이케베의 삼촌에게 연락을 해야겠어. 우리들만으로는 수속이라던가, 여러가지 준비라던지 할수 없으니까」
「잘도」 내가 쥐어짜낸 목소리는 작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뒤돌아보는것과 동시에 형의 멱살을 잡았다.
「잘도 히마리 앞에서, 우리들의 여동생 앞에서 그렇게 쌀쌀맞은 말을 하다니!」 평소에는 생각할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형의 멱살을 죄고 있었다.
「나는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것 뿐이야」 형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가 사실이야!」 나는 형의 멱살을 움켜잡은 채로 벽으로 내던졌다. 쿵 하고 소리가 났다. 하지만 형은 자세도 표정도 무너뜨리지 않았다.
「뭐가 운명이야! 어째서 히마리인거야, 어째서 히마리가 이런 꼴이 되어야 했던 거야. 가족이 아침밥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던 아이인데, 어째서」
나는 다시 오열하며, 그 얼굴을 보이지 않게 아래로 향했다. 분명 눈언저리가 이미 붉어지고 있으리라.
형은, 나의 머리에 톡 하고 손을 올려놓았다.고개를 들어 그 눈을 바라본다. 의외로 상냥한, 커다란 동물과 같은 눈동자로 형은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에게 지워진 「벌」 이겠지」
심장에 못이 박힌것 같았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순한 우연, 나의, 아이의 지나친 상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머릿속 한켠의 검고 작은 상자에 밀어넣고 자물쇠를 채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벌. 그렇다. 우리들은 벌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아이들. 이렇게 살아있는것 만으로도, 누군가를 상처입힐지도 모르는 인간이다. 그걸 히마리가 떠맡고 있었다는 것인가. 조그마한 히마리가, 겨우 혼자서.
「생존전략~~~~~~~~!」
나와 형이 뜻밖의 커다란 목소리에 펄쩍 뛰며 놀랐다. 형은 히마리의 유체 쪽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나도 어깨를 움츠린채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히마리가 수족관에서 막 구입했던 선물인 펭귄 모자를 쓰고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얼굴에 덮여있던 하얀 천이 사르르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히, 히마리?」
큰소리는, 히마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울림이었다. 목소리는 확실히 같았지만, 그 세기나 억양, 목소리 특유의 박력이 달랐다.
한없이 공허한 표정을 지은 히마리의 눈은 저녁놀 때문인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몸은 너희들의 운명이 다다르는 장소에서 왔다. 기뻐하거라. 이몸이 이 아이의 수명을 약간 늘려주기로 했다. 네놈들은 무릎을 꿇고 이몸에게 감사하는게 좋을거야!」
아무말도 답할 수 없었다. 흘끗 형을 바라보자 마찬가지로 아연해하고 있다.
히마리가 그 귀여운 얼굴로 당돌한 웃음을 지으면서 「만약, 이대로 이 아이를 살려두려면」 이라고 말하고 빙그레 웃었다.
나는 앞으로 기우뚱하며 이어지는 말을 들으려 하였다.
히마리가 자세를 가다듬어 차가운 얼굴로 우리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니 펭귄 모자가 간단하게 벗겨져 시츠에 툭 하고 떨어졌다.
「앗」 내가 엉겁결에 모자를 주우려고 달려들었다.
「어라? 쇼쨩, 칸쨩?」 평소와 같은 포근한 히마리의 목소리였다.
「히, 히마리? 히마리야?」 나는 모자 따위는 곧바로 잊어버리고, 멍하니 있는 히마리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여기, 어디야? 나 어떻게 됐어?」 불안하게 자신이 누워있던 침대를 보았다.
「아, 그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내가 얘기하고 있는 히마리는 분명히 내가 잘 알고있는 히마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방금까지의 히마리는 도대체 누구였으며, 죽었을 터인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수족관에서 잠깐 정신을 잃은것 뿐이야. 큰 일은 아니야.」 형이 뒷편에서 다가와, 분명하게 그렇게 말하면서 히마리에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나를 슬쩍 쳐다보면서 「그런거지」 라고 눈짓했다. 쓸데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게 좋다고.
「아, 그런거야. 분명 사람이 많아서 피곤했던거야. 아침부터 제법 떠들썩했으니까」 그렇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히마리가 살아있다는 눈앞의 사실만이 필요하다. 히마리가 죽었다고 생각한건 착각이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히마리, 살아있구나!」 나는 무심코 히마리를 끌어안았다. 말하고 나니 눈물이 번졌다. 아까와는 다른 눈물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무슨 일이야 쇼쨩. 요란스럽게」 히마리는 나의 어깨에 조그마한 손을 올려놓았다. 은은하게 따뜻한 그 손이 무엇보다도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렇지. 이상하다니까」 내가 헤헤헤 하고 웃으면서, 그러면서도 입가는 일그러진 채로 흘러넘치는 눈물을 몇번이고 소매로 훔쳤다.
「그렇지?」
목소리를 낸 형은 의외로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 시트 위로 굴러떨어진 펭귄 모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칸쨩?」 히마리가 형의 고지식한 표정에 재차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역시 아직 무리하면 안돼 히마리」
「응, 그렇네」
아까의, 다른 사람 같았던 히마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건 뭐였던 것일까. 히마리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면 상당히 기묘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형은 그걸 히마리에게 듣지 못했던 것처럼 행동했고, 나라고 해서 그런걸 말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른다.
정말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의 악몽. 오늘 아침만 해도 묘한 꿈을 꾸지 않았던가.
「나, 와시즈카 선생을 불러올게」 형이 조용하게 말하고 히마리의 머리를 확인하려는 듯이 톡톡 하고 두드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눈짓했다.
어쨌든 여기는 영안실이고 히마리는 한번 죽은 걸로 되어있는 거다. 분명 형은 와시즈카 선생에게 히마리의 앞에서는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상담하러 간 것이 분명하다.
「벌써 저녁이네」 히마리가 이상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뭔가 이상한 방이야」
「뭔가, 특별한 검사실이래. 그, 혹시 모르니까라고 와시즈카 선생이. 대단한 검사를 해가지고 말이야. 전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말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히마리는 나름대로 납득한 것처럼 「그렇구나」 라고 끄덕였다.
「미안해. 걱정만 잔뜩 시켜서」 히마리가 조심스럽게 미소지었다.
「그, 그런거 아니야! 봐, 오늘은 「히마리 데이」니까, 더 당당하게 있으라고, 여왕님」
분명 밖은 이제 어둡다. 이제 우리들이 집에 돌아가, 나는 급하게 식사를 만들고, 다같이 그걸 먹고, 따뜻한 차를 내려서 잠깐 한가하게 티비를 보고, 차례대로 목욕을 하고는 잘 자라는 말을 주고받고 잠에 들거다. 히마리 데이는 순조롭게 끝난다.
히마리의 부드러운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는 마음으로부터 휴우 하고, 안심할수 있는 현실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